소리는 어디에나 있다. 다른 파장의 진동은 늘 존재하고 변화하며, 감각하는 신체를 지나치거나 통과한다. 듣는다는 행위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수많은 파장 가운데 의미 있다고 파악되는 어떤 것을 떼어내어 지각하는 것이다. 들었다고 생각하는 감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재조직된다. 나는 친구의 목소리, 실외기의 진동, 도로의 자동차 경적 소리를 동시에 감각하지만 10초 뒤에는 친구의 목소리만을 들었다고 생각한다. 유의미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리만 ‘들리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들리는 소리만이 유의미한 소리이다. 그렇다면 소리들을 펼쳐놓고 듣는 행위를 새롭게 쓰는 일은 같이 존재하는 이들로 연결된 관계와 의미망에 진동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참여자는 홍제천 주변 커뮤니티의 구심점이 되는 장소이기도 한 공간 ‘보틀팩토리’에 모여 사운드워크의 진행 과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기기 작동 방식을 전달받고 함께 출발했다. 쏟아지는 햇빛, 낮은 건물들과 익숙한 보도, 여유롭게 걷거나 뛰는 사람들과 자전거, 강아지, 새, 곤충. 무엇보다 공연을 내내 관통하고 있었던 것은 듣는 행위를 보조하는 장치를 조작하고, 이를 통과하여 형성되는 사운드를 감각하는 행위였다. 참여자는 개인 스마트폰에 위치 정보를 인식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 스마트폰 화면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경로를 찾아갔다. 특정한 구역을 지나는 동안 스마트폰에 연결된 헤드셋에서 작가들이 만든 사운드인 ‘뇌절 트랙’(안민옥), ‘날씨같은 소리’(신원정)가 재생되었다.
함께 출발한 참여자들과 걸으며 애플리케이션을 제대로 작동시키려고 애쓰며 미숙한 조작 때문에 ‘들어야 하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동안, 우리는 어떤 소리가 들리고 어떤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계속해서 서로에게 물었다. (뽕짝 음악 들려? 밖에서 들리는 거야? 헤드셋 연결 제대로 된 거 맞아?) 헤드폰 속 전자 사운드와 우리가 디바이스를 연구하느라 떠들던 소리,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 자전거 벨 소리가 중첩되었다. 지금 느끼는 감각과 의미를 찾아내는 방식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소리 안에서 금방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신체로부터, 감각을 위해 장치를 이용하는 신체로 이행했다. 장치는 필요한 감각을 가능하게 하는 보철로서 기능했고, 확장된 신체가 삐걱거리는 상황은 이 모든 혼합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발을 옮기는 움직임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장치를 이어 붙여 신체를 확장하는 경험은 나와 공간의 경계를 탐색하고, 같은 맥락에 함께 놓인 다른 존재자와 다르게 연결되는 것이기도 했다. 뇌절 트랙을 지나 도달한 다리 밑에서는 안민옥 작가가 직접 제작한 소리 확성 장치 ‘궁극귀-노노’를 소개하고 있었다. 커다란 플라스틱 장치는 홍제천의 작은 소리를 모아 물리적으로 귀에 전달했다. 작은 물줄기에 궁극귀 노노를 갖다 대자 이전에 들어 본 적 없는 큰 볼륨의 물소리가 들렸다. 홍제천을 지나는 주민들은 특이한 색의 플라스틱을 물에 들이대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며 기웃거렸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했다. 구경거리가 되는 묘한 뿌듯함은 우리가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홍제천을 흥미롭게 보이는 공간으로 만드는 요소로 공간에 기입되고 있다는 자각에서 오는 감정에 가까웠다. 우리는 보철을 경유해서, 이 확장된 물리적, 전자적 신체를 제대로 사용하고자 애씀으로써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공간에 합성되었다.
향하는 장소와 통과하는 소리는 정해져 있었지만, 리듬과 경험은 저마다 다르게 펼쳐졌다. 경로의 마지막 장소인 전시공간 ‘미학관’으로 가는 길에서 농구 코트를 지나는데 농구공을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헤드셋에서 들리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로부터 합성된 것인지 원래 조직되어 재생되는 사운드인지 판별하기 위해 우리는 잠깐 앉아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 소리는 어떻게 생겨나서 어느 공간에 머무는가? 어디서 오는가? 이를테면 그 소리는 거기에 있고, 내가 그 공간에 감으로써 소리가 내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장소로 이동하는 행위가 소리를 만들어 내나? 이 소리는 어떤 장치를 거쳐야 하는 소리인가? 헤드셋에서 들리는 소리와 바깥의 소리를 편평하게 펼치고, 한 겹씩 쌓고, 흩어서 서로 이으면서 질문했다.
들으면서 걷는 동안 곁에 머물렀던 소리 중에는 정해진 공간을 지나는 동안 헤드셋에서 들을 수 있었던 전자 사운드, ‘궁극귀’를 통해 들었던 홍제천의 물소리나 새소리, 라디오에서 참여자의 코멘트를 읽어주던 목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곁에 계속 머무르며 변화했던 홍제천의 사운드가 있었을 것이다. 이 소리들은 홍제천의 존재들에서 확장된 것이거나, 무관해 보이지만 다른 방식의 듣기를 제안하는 종류의 파장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참여자들이 공유한 텍스트와 사진을 읽어주는 ‘환삼덩굴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다. 라디오에 보낼 사진을 찍으려는데 징검다리 한복판에 고양이를 품에 안고 앉아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짧은 대화에서 그가 고양이에게 물이 흐르는 것을 보여주려고 매일 홍제천에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사운드워크에 참여했던 다른 동료로부터 같은 고양이와 아저씨를 목격한 사진을 받았다. 고양이는 아저씨의 어깨 위에 잠자코 얹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듣기 위해 귀를(관심을) 기울이면서 걷는 행위는 다른 시간에서 같은 존재와 여러 방식으로 연결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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