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을 사이에 둔 두 개의 길과 육교, 그리고 도로변 코너의 유리 벽 공간에 있었다. 고여 있거나, 있는 그대로 있거나, 흐르거나, 떨고 있었다. 소리는 홍남교 좌우로 약 600미터, 육교 약 100미터, 153cm 신장의 내 보폭으로 5,214걸음 동안 둘러볼 수 있는 장면과 합쳐졌다. 소리는 주로 귀를 덮은 쿠션 안쪽 촘촘한 격자무늬 판에서 새어 나오지만 틈틈이 바깥에서도 비집고 들어왔다. 혹은 바깥으로 향한 깔때기가 파이프 호스를 통해 귀로 전달되었다. 또는 떨림으로, 그저 다가온다.
— 소리는 호수처럼 고여 있었다. GPS와 와이파이 기능이 탑재된 휴대전화를 쥐고,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걸음을 시작했다. 걸음이 둥둥 땅을 울리면 소리가 동심원처럼 넓게 퍼졌다. 또는 있는 그대로의 소리도 있었다. 그런 소리는 사방에 있었고, 가까이 닿기 위해 도움을 줄 ‘노노’가 길 끝에서 기다렸다. ‘노노’는 (내 눈으로 보기에는) 뚫린 헤드셋에 몸통처럼 보이는 파이프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고, 파이프 끝에는 바깥으로 향한 깔때기가 연결된 외형을 가졌다. 그 애는 내 머리에 앉아서 자기가 가진 주름대로 몸을 꿀렁였고, 나는 같이 꿀렁여야 했다. 노노의 리듬에 맞춰 코인지 귀인지 모를 깔때기를 풀이나 물속, 나무껍질에 대면 세상의 깊은 소리가 전해졌다. 흐르는 소리도 있었다. 라디오처럼. 휴대전화를 들고 홍제천의 주파수로 접속하면 발밑을 감는 실타래 같은 말소리가 몸을 간지럽혔다. 어떤 소리는 떨었다. 조심스러운 기척에 나도 모르게 숨죽였다. 그 옆에 잠깐 같이 있고 싶다.
— 어떤 풍경은 보는 것이고, 어떤 풍경은 듣는 것이다. 보는–풍경이자 듣는–풍경이 거듭된 겹으로서의 풍경이 거기 있다.
— 소리를 곁들인 걸음은 보는–풍경(-scape)을 넓힌다. 시선은 소리를 디딤돌 삼아 개구리처럼 폴 폴 튀어 올랐다. 와아– 작은 함성이 귀와 눈을 잡아끌어 향한 곳에는 하천의 잉어 떼, 를 향해 먹이를 던지는 벤치의 할아버지, 의 뒤로 운동 기구를 하나씩 차지한 주민들. 풀들이 서로를 핥는 규칙적인 배경음에 고개를 돌려 수풀, 을 지지대 삼아 집을 지은 거미, 를 골똘히 바라보는 소연, 의 건너편 엉켜있는 연리지 나무, 의 너머 고가도로. 귀를 낚아채는 박수에 다시 선 땅으로 돌아와 나를 스치는 아주머니, 곁의 젊은 여자, 가 찍고 있는 아이, 뒤로는 물길, 의 가장자리 수풀, 이 자리한 습한 땅, 의 쿰쿰한 향. 활짝 핀 꽃, 주위의 벌, 다시 나비, 의 비행을 따라가다가 하늘. 문득 어지럽고 난잡한 삶들 안에 함께 있다는 포만감이 든다.
— 풍경(wind chime)은 동그랗게 패인 종 안에 달린 금속 조각이 팅팅 부딪치며 소리 내는 타악기이다. 바람이 불자 나뭇가지, 들풀, 날벌레, 거꾸리, 우레탄 칩과 보행 보조기의 바퀴가 물 먹은 공기와 부딪히거나 서로와 마주쳤다. 종 또는 금속 조각 된 모든 것들이 내는 소리는 띠를 만들었다. 점처럼 튀어 오른 하나가 기다랗고 얇은 선으로 휘감는 여럿이 되고, 반원의 일렁임이 되었다가 상자가 되어 웅•웅•거리는••• 그러나 비눗방울처럼 터져서 제각각 흐트러지는 세계. 온갖 삶의 질감들이 파동으로 다시 느껴진다.
— 푹 묻혀서 내가 아닌 것들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을 뿐인 풍경이다. 거기에는 어떤 종류의 생생함, 기쁨, 신비로움, 아름다움, 사소함, 그리하여 보잘것없음, 숨죽인 두려움, 말할 수 없음, 들릴 수 없음, 그럼에도 반복되어 왔을 말소리가 있다. 의도치 않게 귀와 걸음을 잡아끄는, 혹은 계속해서 말을 거는, 어제이고 지금이고 언제나의 신호가 될 수 있을 것들. 음차하고 싶은 소리들. 이 사소한 소리말은 번역되지 않은 채, 잊히지 않은 채, 아직 들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러두기는 시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 챈챈 챈 / 자전차찻찻찻차 / 호로로록 호로로록 / 톨톨톨 / 짜짯 (•••) 모기이잉 / 버드르르르 / 물우욱 / 스티로포소솔 / 농구공토톡 / 전동휘이이일체어 / “홍제천은 길에서 움푹 팬 곳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 시끄러운 것 같아요. 소리가 모이는 걸까요?” / 삑삑 / 털털 털 터털 터털 / 피피피핏 / 도로로록 로로록 / 파르르••• / 파르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