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bMuPlat앱에 설치한 프로그램의 나침반 방향에 따라 나름의 속도로 걷거나 멈췄다. 이미 벌어진 사건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사건이 뒤에서부터 감싸오는 것만 같았다. 첫 지점에 다다라 뽕짝이 흐를 때, 자꾸 주위를 돌아보았다. 지금인가? 싶어서. 하지만 나는 다른 이가 다른 시간에 경험했던 소리 안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겹친 지금의 소리도 함께 들었다. 그건 적어도 나에게는 지금일 텐데,
계속 ‘지금’이 빗겨나갔다. 〈뇌절 트랙〉을 들으면서 분명 일직선으로 걷고 있는데도 다른 곳으로 계속 새고 있었다. 그러다 다리와 연결된 콘크리트 언덕에서 고양이들과 놀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올블랙의 등산복을 입고 있던 그는 고양이 낚싯대를 휘두르며 노란 줄무늬 고양이 세 마리의 주목을 받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몹시 다정하달까 코믹해서 나는 들고 있던 기기로 사진을 찍었다. 프로그램에서 벗어나서인지 그 순간 트랙이 끊겨 버렸다. 나는 당황하며 다시 트랙을 재생해 보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사진: 우에타 지로 사진제공: 다이애나 밴드
궁극귀 ‘노노’와 ‘노노의 식솔들’은 새어나간 것마저 주의 깊게 찾도록 했다. 돌의 피부를 스치는 공기나 물 표면의 안과 밖, 풀과 아스팔트 사이, 하천 위로 흐르는 소음... 어디로 가버렸지? 보라색의 깔때기 귀로 주변을 주워 담는 내가 어떤 개는 못마땅해 왈왈 짖었다. 나는 난데없는 이방 존재 취급에 왠지 더 즐거워졌다. “여러분~ 이제 다들 여기로 모이세요~” 아마존 익스프레스 알바생처럼 노란 외투를 입고 있는 민옥이 명랑하게 소리쳤고, 나는 다시 그냥 인간으로 돌아왔다.
사진: 우에타 지로 사진제공: 다이애나 밴드
‘환삼’은 ‘환상’의 오타인 걸까? 검색 결과 ‘환삼덩굴’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것의 사진도 찾았다. 사진이 떠오른 기기 옆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천변에 이미 넓게 펼쳐져 있던 것이다. 희주도 〈환삼덩굴 라디오〉 진행을 홀로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가 심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조곤조곤한 말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어서 그가 정말 심심한지 심심하지 않은지 판단할 수 없었다. 순서를 매긴 시퀀스에 따라 정보와 감상, 이야기를 넘나들며 희주는 주파수를 방출했고 나는 간간이 그걸 수신했다.
사진: 자림
기기를 통해 들려오는 농구공 소리와 지금 농구를 하는 사람들의 소리, 그리고 동행인의 ‘나도 농구를 좋아했는데…’ 하는 말은 먹고 있던 초코바(보틀팩토리를 나서기 전 모두에게 챙겨준 것이다)가 그랬듯이 동시에 다른 맛을 냈다. 연리지를 바라볼 때 흐르는 대칭적인 피아노 연주처럼 각각의 맛들은 서로 가까이 다가가 얽혔다. 얽힌 것들의 빈틈에서 발생한 소리가 미학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가만히 앉아 사물들이 내는 소리를 들을 뿐이었다.
사진: 우에타 지로 사진제공: 다이애나 밴드
듣기만 하는데도 (엄밀히 말하면 찾고 들으며 걸었지만)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었다. 나는 이 걸음에서 무엇이 능동적이었고 무엇이 수동적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몸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에 친절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다만 홍제천을 ‘이런 방식으로’ 걸어본 적은 없었다. ‘이런 방식’이란 홍제천 곳곳의 존재와 사건을 온몸으로 감지하면서 걷는 것이다. 산책을 좋아해 자주 걸었다고는 해도, 내 걸음의 목적은 분명했다. 친구와 이야기를 천천히 나누기 위해서라거나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달린다거나 잠시 환기하면서 공상에 빠진다거나 하는. 어떤 사물이나 사건이 나를 끌어들이고, 내가 그 속에 빠져들도록 허용한 일은 없었다.
내게 이 걸음의 의미는 자리를 바꿔보는 일에 있다. 초대하는 이와 초대에 응하는 이, 상황을 주도하는 이와 수용하는 이, 드러나는 이와 찾는 이 사이를 횡단하며 기꺼이 얽히는 일이다. 얽힘을 느끼는 일이다. 빈틈이 생기고, 소리가 흐른다. 앉아서 듣는 이가 있다. 길을 잃을 일은 없다. 정해진 길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가 구멍을 드나드는 모든 것에 친절해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