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하는 귀, 흐르는 걸음, 벌어진 사고》는 다이애나 밴드(신원정, 이두호), 안민옥, 임희주가 참여한 사운드 워크 공연이자, 미학관에서 2024년 10월 17일부터 27일까지 펼쳐진
사운드 설치 전시이기도 하다. 공연의 참여자들은 약 1시간가량 홍제천을 걸었는데, GPS를 기반으로 위치에 따라 다른 소리가 재생되도록 설정된 어플 프로그램과 함께였다. 참
여자들은 휴대폰을 한 손에 들고 개인 음향 장치를 착용한 채, 홍남교에서 걷기를 시작하여 연가교에서 청각 보조 장치 ‘궁극귀 노노’를 만났다가 홍연교로 되돌아가 미학관에
설치된 사물들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미리 설정된 구역에 도착하면 안민옥의 ‘뇌절트랙’
(#1 주파수 구간 #2 Transpose #3 Delay #4 EQ #5 모든 효과가 다 섞인 뇌절 of 뇌절 트랙), 다이애나 밴드의 ‘날씨 같은 소리’ (#1 뽕짝과 공중걷기 #2 건반 한가운데서 오른손은 도에서부터 왼손은 라에서부터 #3 집중호우와 엎어진 멜로디 혼 #4 장면 합성 #5 물소리 조각을 여기에서 저기로 옮기기 #6 지나가는 무게들 #7 귀뚜라미) 가 재생되었으며, 임희주가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고 있는 <환삼덩굴라디오>를 다른 소리와 합성해
들을 수 있었고, 다이애나 밴드의 <구멍일지>에 참여자들은 홍제천을 걷다 만난 것들을 촬영해 업로드할 수 있었다.
작업의 구조는 꽤 복잡해 보이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소리 나침반 같은
것을 켜고 홍제천을 걸어 다니면 되는 것이었다. 홍제천은 이 공연으로 인해 거대한 세
계관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홍제천의 일상적인 산책로엔 군데군데 얕고 작은 구멍들이
패여 있고 우리는 잠시 거기에 휘말리며 휘청휘청 걸어 다니면 되었다. 다른 산책자들
사이에서 우리의 모습은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았으며 그저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휴
대폰의 위치를 요리조리 설정하는, 유독 느리게 걷는 사람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것은
아예 새로운 세계를 홍제천에 덧씌우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필름지에 장면을 드로잉하고
홍제천 위에 그것을 잠시 겹쳐놓는 일이었다.
그들이 제공한 소리에 휘말리는 동안 나는 내 생각의 소란을 멈추고 그들의 소란에 동참했다. 그들의 소란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소란은 결코 그 소란의 움직임 자체를 가시화하기 위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소란을 통해 새로이 가리켜지는 홍제천의 틈새들을 보아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재생되는 소리는 노이즈와 같은
사운드 이펙트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 공간에서 지금은 발생하지 않지만 분명 날 법한
소리였다. 그래서 트로트 노래가 나오는 첫 시퀀스에 (실제로 지도에는 각각의 소리가
Scene이라 표시되어 있다) 들어섰을 때 나는 그것이 내 음향 장치에서 재생되고 있는 것이 아닌 산책로에서 현재 들리는 소리라 착각하여 내 휴대폰에 오류가 있는 것 같다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임희주가 진행하였던 <환삼덩굴라디오> 역시 홍제천을 가득 둘러싸고 있는 환삼덩굴 군락에 대해 설명하며 그것들의 생김새와 소리, 서식 환경에 집중하게 했다. 연가교 아래에서 만난 궁극귀 ‘노노’는 진공 청소기와 같은 형태로 한참 아래에서 나는 소리를 바로 내 옆에서 들려주거나 혹은 주변의 소리를 확대해 들려주었다.
궁극귀 ‘노노’를 끼고 있으면 세계가 평평해졌다. 홍제천의 물 흐르는 소리를 크게 확대해 들을 때, 풀이 스치는 소리를 큰 귀로 들을 때, 나는 수직 보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미학관에는 홍제천에 서식하던 생물들처럼
녹색의 깔개 더미와 가공되지 않은 목재, 전선 같은 것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그 사이 사이에서 다이애나 밴드가 기존에 공개한 바 있는 사운드 오브제들이 미세한 소리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나는 사운드 워크를 토대로 익숙해진 귀 기울이기 방식을 사물에 적용해 보게 되었다. 원래 소리 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물들의 미세한 소리를 듣고, 거꾸로 소리를 통해 사물의 존재 방식을 짐작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홍제천 산책이었다고 하기엔 어렵다. 분명 무언가를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 안내문엔 이것을 홍제천 “탐험”이라 부르고 있었지만, 글쎄...내게
이것은 초대에 응하는 일에 더 가까웠다. 무언가가 거기에서 내가 들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리들은 사실 언제나 나를 초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제야 알아챘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