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과 초가을이 중첩되는 순간이 느껴지던 쾌창한 날씨였다. 홍제천의 두터운 소리를 좋아하는 산만한 관객이었던 나는 이어폰을 한 쪽에만 껴고 산보를 시작했다. 구멍이 열린 한쪽 귀에서는 끊임없이 지금의 소리들이 흘러들어오고, 반대로 닫아둔 다른 쪽 귀에서는 누군가 채집한 변형한 송출한 소리들이 간헐적으로 흐른다. 오늘은 멈추지 않는 소리보다는 드문드문 멈추곤 하는 소리들에 신경이 쏠리는 몸이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소리가 작아지거나 멈추는 과거의 구간마다 현재의 소리가 침범하지만 몸의 균형을 맞추기에는 부족하다. 소리의 그림자를 목격한 몸은 그것이 다시 돌아오고 나타날 순간만을 기다리며 걷기 시작한다. 소리를 듣는 몸은 그렇게 소리를 찾는 몸이 되어간다. 소리를 찾는 몸짓은 그리 역동적이지 않았다. 소리가 우리를 더 빨리 찾아내도록 몸의 방향을 잘 맞추면 된다. 소리는 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찾아지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소리가 현재의 몸을 찾는 순간 납작하고 얇게 누워있던 풍경이 펼쳐졌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휘저을수록 부풀어오르는 솜사탕처럼, 소리 그림자가 커다랗게 형태를 키워나가며 산책길을 확장시킨다. 장면을 목격할수록 점점 더 쌓여가는 기억들이 발에 달라붙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이 기억들이 다시 솜사탕처럼 가볍게 날아가버리는 걸 보았다. 소리의 풍경이 다시 납작해지며 그림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기울어진 몸으로 한쪽에만 꼈던 이어폰을 귀에서 빼자 밀려있던 소리들이 한번에 파도처럼 밀려들어온다. 다시 몸이 반대쪽으로 기울어진다. 흘려보내고 싶은 소리들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들어오곤 하며, 수집하고 싶은 소리들도 어느새 내 몸에서 나가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 수집하는 것도 버리는 것도 온전히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불완전한 몸을 지닌채로 또 산책길을 찾는다. 소리에는 늘 그림자가 있고 납작한 곳엔 언제나 물기가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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