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_ 모이고 장착하기
머쓱하고 반가운 상태. 동시에 여러 일에 치여 조금은 불안정한 마음으로 "향하는 귀, 흐르는 걸음, 벌어진 사고" 사운드 워크의 시작장소인 동네 카페 ‘보틀 라운지’에 갔다. 1층 카페의 유리창 너머, 마치 내 미래가 예고되는 듯, 먼저 도착한 그룹이 모여 앉아 무언가를 같이 하고 있었다. 앞선 그룹을 두고 대기 안내를 받은 후, 지하에서 머물며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을 마주했다. 공교롭게도 아는 얼굴들이 꽤 보였다. ‘이런 우연이 다 있네’ 혼잣말이 스쳤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자, 참가자들의 핸드폰으로 설치해야 하는 프로그램의 정보가 메시지로 도착했다. 나는 최근에 핸드폰을 바꿔 아직 이어폰이나 에어팟을 사용하지 않아 장비를 빌렸다. 이 미션에 무탈히 적응할 수 있을까? 아주 약간의 긴장이 함께했다.
공연 시간이 되었다. 예고된 미래로 왔다. 1층에 둘러 앉아 우리는 안내에 따라 각자의 핸드폰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마저 설치했다. 앞으로 이 공연의 시간 동안 우리에게 소리를 제공해줄 플랫폼을 스스로 심는 일이다. 익숙치는 않은데, 잘 될까? 걱정하면서도, 이제는 ‘나’와 지극히도 한 몸으로 붙어있을 핸드폰에 새로운 플랫폼이 이식되는 것에 약간의 설렘과 기쁨이 있었다. 핸드폰을 몸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그 설렘의 이유를 돌아보니 이미 그 작은 기기는 내게 몸이기도 하고, 옷이기도 한 사물이었기 때문도 있었다.
2장_ 확성
핸드폰, 나. 이어폰. 작은 지도. 그리고 한 팀의 사람들.
이들과 카페 밖을 나서 홍제천으로 향했다. 이 공연의 규칙은 단순하다. ‘소리의 방향을 따라 걷는다.’ 앞, 뒤, 양옆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호흡에 영향을 받으며, 나는 나와 기기 사이의 접속 상태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저쪽에서 소리가 들려! “
장착한 이어폰을 통해 들려온 소리는 방향을 가리키며 점점 커졌다. 확성되는 소리. 이것이 소리만의 특징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성되는 소리는 언제나 내게 그 소리의 주체가 다가온다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경험을 이렇게 묘사해볼 수 있을까?
“내가 이 지점으로 간다.” (의지) 라기 보단, “그 지점이 나에게 다가오고, 그래서 간다.” (기대와 의지) 와 가깝다고.
나는 이 확장되는 소리를 “페이드 인(Fade in)” 이라고 부르고 싶다. 부름의 소리가 지속적인 초대를 열어내고, 내 몸은 그 초대에 응하며 묘한 균형감 속에서 움직인다. 초대하는 소리의 안과 밖을 따라 걷는 일. ‘흐르는 걸음’이라는 말과 꽤 잘 어울린다.
3장_가산 혼합되는 기억
지도에 따라 이어폰으로 전해지는 소리는 몇 가지로 나뉘는 듯했다.
1)기록된 풍경의 소리.
2)누군가의 정서나 감각이 부여된 음악적인 소리.
3)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속에 말을 건네는 사람의 소리.
‘그런데 잠깐, 여기서 나는 이곳을 어디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핸드폰? 이어폰? 소리를 듣게된 장소? 방향? 내 귀? 이런 질문은 흥미로운 (유익한) 질문인가? 아닌가?’ 일단 이렇게만 떠올린다.
첫 번째로 들려온 기록된 풍경의 소리는 마치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처럼 생생했다. 운동기구들 앞에서 흘러나온 뽕짝음악. 홍제천 산책이 익숙한 나로서는, 이미 여러 번 경험으로 듣고 보았던 장면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흠… 이런 사건들이 있었지.’ 정확한 모습 없이 남겨진 소리는 투명한 사건이 되어 나의 기억과 장면과 교차됐다. 소리와 기억의 동맹.
개인의 경험을 연상시키는, 익숙한 풍경으로 기록된 소리는 이렇게 각자의 서사에 동맹을 맺는 듯 연결된다. 이 동맹. 특히나 전달자의 의도가 담긴 경우, 소리는 마법이나 주술처럼 다가온다. 왜 마법이나 주술이라고 느껴질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즉각적으로 떠오른 나의 기억과, 실제로 녹음된 소리의 진실이 같지 않더라도 그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청자에게 또한 이미 사건은 일어났기에, 실체와 실체 아닌 것 사이의 구분. (기록된 소리가 실제로 발생한 사건의 실체가 내가 갖고 있는 것과 똑같지 않더라도) 그러니깐 이 진실의 구분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닌 것 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단적으로 조금 지루한 예시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용하는 폴리 사운드의 과정이 서사의 몰입에 대체로 특별나게 방해가되지는 않는 것 처럼 말이다. 더군다나, 예시의 폴리 사운드처럼 정확한 목표가 없을 경우. 그리고 내가 듣고 있는 소리가 실제로 이 장소의 과거의 소리가 녹음되었을 경우. 각 개개인들이 품었던 장소의 기억들이 결속되는 신비한 현상의 마법은 더욱 커진다.
나는 꿈처럼 소리를 따라 홍제천의 과거로 돌아갔다. ‘아 농구공을 튕기고 있었을 사람들, 운동기구, 빗소리, 풀벌레 소리….’ 이 과거는 꼭 꿈과 같다. 타인이 듣고 있었을 시간의 기록에서 내 기억이 발견된다는 것.
물론 이 마법은 단지 녹음된 소리의 효과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이 여정에서 만나는 소리의 경험 배열들 덕분이다.. 앞서 말했던 이어폰 장치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소리 1)기록된 풍경의 소리 2)누군가의 정서나 감각이 부여된 음악적인 소리. 3)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속에 말을 건네는 사람의 소리 를 비롯하여, 4)실제 만나는 사람의 목소리 5)거리의 소음 6)앞으로 만날 궁국 귀 ‘노노’를 통한 소리 7) 그리고 이 공연에서 주어지는 듣기의 주권이 소리와 기억, 사유망을 활성화시켰다.
내 몸과 기기의 방향과 움직임을 바꾸면서, 이어폰 안과 밖을 비롯한 환경의 소리를 스스로 혼합할 수 있는 주권. 나의 기억을 타인의 소리와 반응시키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 빛의 색을 섞으면 하얀색이 되는 것처럼, 소리 기억을 혼합시키면 더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들어갈 수 있는 투명한 공간이 생긴다.
4장_ 새로운 사건과 목소리 나침반
구체적인 기억들을 뒤로하고, 변형된 소리 주파수가 다가왔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전환되었고 새로운 사건이 예고되었다. 이 소리는 나의 나를 기억의 구체성 밖으로 끌어냈다. 그 덕분에 기억 바깥의 사건들이 생겨났다. 새로운 풍경은 비틀리고 확장된다. 경험하지 않았던 소리 사건이 배치됨으로써, 익숙했던 기억에 균열이 났다. 그것은 또 다른 몰입으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 장소와 시간은 새로운 영화입니다.” 소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눈앞의 풍경은 열려 있지만, 어두운 영사기를 통과하는 막이 드리워졌다. 이 사건을 지나가며 나는 ‘개인적인’ 상태가 되었다.
그 다음부터 라디오 채널로 접속을 시도했다. 어딘가에서 말하고 있을 희주씨의 목소리가 흘러갔다. 안정적인 중저음. ‘어딘가에 이 사람이 있다.’ 배터리가 나가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것 같다. 이 사람이 실시간으로 겪었을 난감함. 여기 어딘가에서 저기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을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야외의 공간에서 내가 놓을 순 없는 아주 미묘한 불안감. 이 경로에서 나만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감정이 상호작용하며, 이 곳 저 곳을 떠돌며 방송을 하고 있을 누군가의 불확실한 상황이 또 다른 위치의 내게 어떤 안정감을 준다.
여기서 언제든 길을 잃어도 되고, 언제든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
5장_공유 ‘귀’
소리의 방향을 따라 걷던 중 흩어진 사람들은 ‘노노’를 만났다. 노란색 옷을 입은 민옥씨가 궁국의 귀 ‘노노’에 대해 설명했다. 그것은 귀엽고 요상하게 생긴 귀였다. ‘노노’를 착용하며 다시 모인 사람들과 우리가 되었다. 이어폰을 내려두고, 각자 다른 ‘노노’와 그 친구들을 귀에 장착했다.
“이렇게 들어볼까요? 이렇게 들어보는 것 어때요?”
움직임과 귀를 두는 위치에 따라 ‘노노’의 귀는 소리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노노’로 풍경을 듣는 방법들을 공유했다. 흥미롭다. 적극적인 청자의 몸은 언제나 연주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그리고 흩어진 사람들과 급격히 ‘우리’로서의 친밀감을 갖는다. ‘노노’가 텔레토비의 청소기 ‘누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꼭 이 귀는 ‘혼자가 아니오(no no)!’를 꺼내는 장치처럼도 느껴졌다. 엉뚱하게 생각 난 노래. “슬퍼하지마 노노노~ 혼자가 아니야 노노노~”
6장_ 우두커니
‘노노’와의 즐거운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흩어졌다.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혼자 길을 잃어도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라디오 목소리와 나, 소리들의 합성 속에 천천히, 천천히 홀로, 홀로 머물렀다. 모든 긴장이 풀렸다. 운 좋게 해가 저물어 간다. 문득 잊고 있던 초콜릿이 생각나 꺼내 먹었다. ‘앗 정말 여행이다.’
홍제천 길목에서 마지막 안내원인 재형씨의 인사를 받고, 홍제천을 떠나 도로변에 있는 전시 공간인 ‘미학관’으로 향했다. 전시장 유리창 너머로, 먼저 여정을 마친 친구가 우두커니 사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그녀가 보고있는 사물들이 느껴졌다. 어둠이 밀려왔고, 유리창엔 잔상들이 흩어지고 다시 나타났다. 조용히 문을 열고, 그 시간에 합류했다. 우루루 쏟아낸 듯한 초록빛 바닥들 안과 밖의 움직임. 허공을 회전하는 낚시찌. 창 밖의 노을과 다가오는 사람들. 모두가 우두커니 자신의 위치에서 잔잔히 파동을 만들고 있었다.
7장_ 정다운 작별
더 길게 머물고 싶었지만, 예상 시간이 초과되어 아쉽게 문밖을 나섰다. 처음 출발했던 보틀라운지 카페로 돌아왔다. 동행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도착했다. 여정 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꼭 ‘집’처럼 느껴졌다. 그들에게 더 가까운 마음을 느꼈다. 그 마음 덕분에 작별이 정다웠다. 그럴 때 기분이 좋다. 어떤 공연을 끝까지 보고 집에 가는 길에 온기로 인사를 나눌 수 있을 때. 그렇게 다정히 인사를 나눈 후, 다시 홍제천을 건너 귀가했다.
그 후 이 여정은 내 일상으로 계속 흘렀다. 홍제천을 산책할 때마다, 문득 문득 그때, 그날의 장면과 소리를 떠올린다. 그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 정다운 일이다.
8장_ 에필로그
공연이 끝나고 약 3~4개월이 지난 뒤, 기억을 따라갔다. 이 이야기엔 분명 변형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지도가 정말 있었나? 분명 챙겨왔었던 것 같은데, 집에선 종이가 보이지 않는다. 잘못된 기억 속 정보가 누군가에게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지도 모른다. 사실을 정확하게 맞추기보다는 모두 내 뇌리에 남겨진 사건들을 혼자 흥얼거리듯 꺼낸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글의 순서가 이 여정의 순서와 꼭 맞지도 않다. 여러 시간이 혼재되어 있다.
고백하자면, 공연당일 귀가 후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여정의 현장에 집중하다 어느 순간 "구멍 일지"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분명 출발할 때에는 텍스트와 제목을 읽고 ‘구멍들은 어디서 발견하는것일까?’ 검은 구멍의 풍경을 상상했었는데, 그 정체를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나중에 보니 공동 기록장이었던 것 같은데, 접속하지 못했던 듯 하다. 놓치면 놓친 대로, 기억이 소실되는 대로 흘려보내며 그렇게 이 글을 이어 나갔다. 껴맞춰 말해보자면 그냥 그것이이 여정의 산책과도 닮은 태도가 아닐까? 길에서 문득 잊었던 초콜릿 한 입 깨물었을 때, 떠올랐던 여행의 감각.
Fade in, 슈우웅. Fade Out, 샤아아. 찾지 못한 시간, 잃어버린 시간, 기억되고 있는 시간.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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