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었다는 믿음 혹은 리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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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그레이스


저 땅 밑 물의 소리는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감각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몸에서 몸으로 전달되는 파동으로 소리는 이미 우리에게 도달해 있다. 침묵이란 누군가 파동을 물리적으로 약화시키거나 내가 그것에 귀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들리지 않는, 의도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섬에 살고 있는 수많은 존재들의 소리는 비극적인 역사를 거쳐 관광과 개발의 논리에 이르기까지 줄곧 소거 되어왔다.

제주  '땅 밑 물의 소리가 존재한다'는 명제와 '어떻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안고 먼저 우리의 몸을 물의 환경에 두는 것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층위의 흙, 돌, 땅을 적시고 번지는 물을 경험하며 섬의 땅은 우리가 서 있는 표면이 아닌 물이 스치는 공간이 되었고, 흐르는 물의 소리를 증폭시켜 채집하려던 마이크로폰과 녹음기는 새로운 듣기구조체를 찾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몸을 다해 듣기로 한다. 미지의 잡음을 들으며 추측한다. 내가 듣는 것이 물의 소리가 맞을까? 닿지 않는 지하의 리듬을 들어본다. 반향과 공명을 통해 소리는 존재하고 소거된 어떤 소리라도 그 소거 이전의 파동에 의해 들려지고 있다. 표면 아래의, 다른 차원의, 나와 다른 듣기 구조체들을 상상해보아야 할 때다. 우리는 다른 존재의 다른 시간대, 그 시간의 리듬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껏 우리에게 물은 아래에서 위로 솟아올라 다시 아래로 흐르는 선형의 시간성이었다. 하지만 각종 틈으로 스며든 '물의 아카이브'는 우발적이며 다원적인 시간성을 머금고 있다. 우리는 솟아오르기 전 물의 상태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표층수와 심층수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과학적인 수치와 근거로 추정할 뿐이다. 땅 속 물을 듣는다는 것은 이 물의 시간성에 참여하는 것, 물의 의지를 모른다고 선언하는 것, 그럼에도 우리의 파동이 연쇄, 연결되어 있음을 믿는 것이다. 모래 알갱이와 바위의 귀를 상상하며 이 순간 이곳의 물 구조와 네트워크를 나는 이격(耳擊)한다. 지나간 물의 음정을 들은 것 같아, 스스로에게 선언한 순간 음소거는 해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