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와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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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궁금하다. 왜 아버지는 거실에서 떠날 줄을 모를까? 나 혼자만 패륜적인 마음으로 불만을 품는지 의심한 적도 있었지만, 커뮤니티에 누군가가 “거실에 꿀 발라뒀냐?”라는 의문을 표하는 것을 보며 이것은 보편적인 사고라는 용기를 얻었다. 거실에 있는 것이 불만인 점은 TV를 틀어두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집의 모든 공간은 거실과 맞닿아있기에, 온 집안에 TV 소리가 울린다. 예전엔 잘 몰랐지만, 은둔생활을 한 지 10여 년이 지난 요즘 갑자기 느낀 점은 예전보다 TV 볼륨이 커졌다는 점이다. 내가 작업실에 가는 것 이외엔 집에만 있다 보니 더 예민하게 느끼는 것일까? 한번 거실로 나가보니, 저녁 반주 후 곯아떨어져 마루에 널브러진 아버지를 두고 TV는 여름 매미처럼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리모컨을 들어 음량을 조절하니 자그마치 50에 이르러있는 숫자를 보고 말았다. 볼륨을 8로 낮춘 뒤, TV를 끄고 방에 돌아왔다. 어쩌다 이런 사운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것일까? 노화에 따른 청력 저하일까? 하지만 놀랍게도 TV가 꺼지면 잠든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TV를 켜고 볼륨을 올리곤 한다. 귀가 먹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반응이다.

생각해 보면 감각은 몸과 마음의 영향을 둘 다 받는다. 나의 경우 자라는 내내 귀가 좀 안 좋다고 자신을 여겨왔지만, 대학 시절 수많은 사람이 내 목소리와 말투를 따라 하며 놀려댔고, 시다 생활을 길게 하니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됐다. 심지어 소리가 들릴 때보다 소리가 안 들릴 때 더 예민해지기도 했다. 정확히 얘기하면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안 들릴 때 그렇게 된다. 나를 불렀는데 내가 대답을 못해서 혼이 난다거나, 누군가가 나를 모욕하는데 듣지 못하고 넘긴다거나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기에 나는 소리가 잘 안 들릴 때 더 민감하게 반응했고, 결국 귀가 밝은 사람이란 평을 듣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모든 의심이 사실은 아니기에, 한동안 나는 누구도 그러지 않은 때조차 누가 나를 불렀다거나, 나를 두고 비웃고 있다는 망상에 빠지곤 했다.

아마 아버지도 TV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보다 TV 소리가 나지 않는 것에 더 예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이해하고 싶지가 않다. 나는 지난 몇 년간 TV 소리에 노이로제가 살짝 생겼기 때문에 이제는 소리가 안 들려야 하는데 들리는 상황이 불안하다. 가끔 영화에서 킬러가 총소리를 감추기 위해 TV 볼륨을 높이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총기 소지가 어려운 한국에 살며 이런 상상을 하는 것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가끔 나는 밤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TV 소리를 들으며 혹시 나의 아버지가 킬러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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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깼을 때, 달큰하게 썩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방에는 별다른 음식물이 없었기에 한참을 헤매다가 나는 깨달았다. 봄에 친구가 이사 가며 냉장고를 준 까닭에 작업실 냉장고를 바꿨는데, 여기에 양배추 반 통이 들어 있었다. 물론 양배추는 잘 상하지 않는 얌전한 채소다. 게다가 한번은 거뭇해진 단면을 덜어내고 양배추 볶음밥을 해 먹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바빠서 양배추를 돌보지 못했기에 이제는 양배추가 썩을 법도 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면 나는 집에서 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하 작업실의 냉장고 신선칸 안에 랩으로 감싸진 양배추의 썩은 냄새를 맡았던 것일까? 하지만 나는 알러지성 비염으로 자주 코가 막히기도 하니 단순한 착각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냄새를 맡고 자연스럽게 작업실 냉장고 안에 있는 양배추의 안위를 걱정하고 말았을까? 나의 직감이 작용하여 작업실의 양배추를 구출하라는 신호는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어 작업실에 가봤으나 양배추는 멀쩡했다. 달큰한 썩은 내 또한 단지 나의 불안과 망상으로 빚어낸 착각일 뿐이었을까?

귀가하니 집에선 또 아버지가 생선을 구웠는지 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리고 왠지 달큰한 썩은 내가 같이 났다. 양배추에 대한 걱정으로 괜히 감각을 부풀리고 오해했다고 여겼는데, 분명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집에만 오면 시끄러워서 기분이 안 좋은데, 이젠 냄새도 풀풀 풍기니 짜증이 나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얼른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렇게 저녁 내내 방에 있다 보니 왠지 입이 심심해서 뭔가 집어먹을 것이 있을까 싶어 방을 나와 부엌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모서리에 걸려서 보이진 않았지만, 마침 TV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거실에서 알아차리기 힘든 정도지만 총소리가 들렸고 쿵 하고 뭔가 쓰러지는 소리도 분명히 들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숨기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길에 분명히 마룻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인영(人影)을 봤다. 저기 널브러진 사람은 아버지였을까? 아니면 아버지가 널브러뜨린 다른 사람일까? 저 TV 소리가 갑자기 꺼진다면 참 무섭겠구나. 방문을 잠근 채 한참을 숨죽이다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 아니면 청부를 의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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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세계》 첫번째 묶음

최주원
조각과 글쓰기를 합니다. 최근 ‘두 발이 움직이는 한, 어디든 갈 수 있다’라는 생각에 걸어서 귀가하고 있습니다.

https://ururu.cloud/~sound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