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몬테 영, 마리안 자질라, 최정희 그리고 판딧 프란 나트: 우연성과 사랑에 대하여 그저 팬심으로 지껄임
나는 원정에게 드론 음악에 대해 뭔가를 써보겠다고 말했다. 이 글은 단순 리스너인 내가 오랜 기간 고요히 흠모해온 장르인 ‘드론’에 대해 지껄이는, 일종의 사랑 고백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근래에 들어 드론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음악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냥 한 번 만들어 보는 것 어떨까? 글을 편하게 써보는 건? 영화를 거리낌없이 ‘막’ 찍어보는 건 어때? 뭐, 이런 류의 자신과의 대화 끝에는 항상 이 질문이 있다: 작가적 자의식에서 자유로운 순간이,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확정성의 시간을 인식하면서 그와 함께 머무르는 것이 가능한가? 물론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절대 아니다.
어쩌면 내가 드론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할 때,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태를 의식적으로 연습해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내가 관심을 가져온 것도 대체로 그런 일이었다. 현실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 채, 그러나 아무렇게나 방치하지도 않은 채, 무언가가 나타날 수 있는 시간 속에 머무르는 것을 최대한 타진하기.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실패하고 말지. 그런 의미에서 드론은 내게 음악이기 이전에 하나의 기다림의 형식이기도, 기다림을 수련하는 것일지도.
20대 초반, 라 몬테 영(La Monte Young : 실제로는 ‘라 몬ㅌ 영’으로 발음), 마리안 자질라(Marian Zazeela), 최정희(Jung Hee Choi)의 뉴욕 공간 <드림하우스>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곳은 장소라기보다는 소리환경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했을 테고, 어떤 상태(아마도 ‘꿈’?)로 기억된다. 음, 과장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봐도, 보라색과 자주색, 빨간색과 주황색으로 아주 느리게, 하지만 분명히 생동하는 빛 속에서 몸이 부유하는 꿈이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영과 자질라는 프로젝트로서의 드림하우스를 “소리와 빛의 연속적인 주파수 설정으로 측정되는 시간 설치”라고 불렀다(“a time installation measured by a setting of continuous frequencies in sound and light”). 그 시간에서 자질라의 조명 설치 ≪Imagic Light≫가 비추는 몸은 세 겹의 그림자와 함께 움직인다. 그림자는 바람을 만들고 바람은 빛을 움직인다. 이와 동시에 32개의 비율로 관계 맺는 사인(sine)파가 실시간으로 생성된다. 아래는 그 작업의 엄청난 제목이다.
<The Base 9:7:4 Symmetry in Prime Time When Centered above and below The Lowest Term Primes in The Range 288 to 224 with The Addition of 279 and 261 in Which The Half of The Symmetric Division Mapped above and Including 288 Consists of The Powers of 2 Multiplied by The Primes within The Ranges of 144 to 128, 72 to 64 and 36 to 32 Which Are Symmetrical to Those Primes in Lowest Terms in The Half of The Symmetric Division Mapped below and Including 224 within The Ranges 126 to 112, 63 to 56 and 31.5 to 28 with The Addition of 119>
사인파는 스피커에서 나와 사방에서 겹치고 부딪히고 사라지며 소리의 지형을 만든다. 한 걸음 움직이면 소리도 달라지고, 소리가 달라지면 몸의 향방도 달라진다. 영이 전력선의 허밍부터 드로닝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곳의 몸은 개별 수용체라기 보다는 주파수의 배열 속에 잠시 설치되어, 빛과 소리의 실시간 조건에 반응하는 몸들 중 하나에 가까웠다.
이 소리의 좌표는 공간을 지시하지 않는다. 꿈의 지리학에 더 가까울 테지. 이제 몸은 이 좌표를 통과하고, 통과되고, 그 속의 일부로 영원한 음악(Eternal music)되어 머무는 수밖에 없다. 탄푸라와 타블라가 연주되고 자질라, 영, 최정희의 라가가 시작된다. 4시간 동안의 ‘시작(알랍-라가를 여는 시간)’이다. 이 앙상블의 이름은 저스트 알랍 라가 앙상블(The Just Alap Raga Ensemble)인데 여기서 ‘Just’는 순정율(Just Intonation)의 ‘순정’이기도 그저 ‘그냥’이기도 한 것이다(!).
그들의 스승인 판딧 프란 나트(Pandit Pran Nath)의 북인도 성악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세 목소리의 앙상블로 변형된 순정율의 드론을 나는 그 언젠가 들었다, 흠, 들었다고 할 수 있나? 통과했다. 여하튼 그 시간 동안 나의 상태는 변화되었고, 그게 일상으로 쭉 지속되었다 볼 수는 없지만, 판딧 프란 나트의 1976년 8월 21일 뉴욕 라가 말카운스 녹음본 ≪21 VIII 76 NYC Raga Malkauns≫을 들을 때, 그 상태는 돌아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녹음본의 탄푸라는 영과 자질라가 연주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 음악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기억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이 ≪The Well-Tuned Piano≫를 연주할 때마다 기억과 즉흥 사이에서 순정율을 변주하고 재생성하듯, 드림하우스에 설치되었던 ‘몸’으로서 그 꿈을 우연히 다시 방문하는 것이다. 운 좋게도 나는 2012년 베를린의 드림하우스에도 설치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한 재료를 찾아보면서 이번 달에 드림하우스가 한국에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정말이지 나는 이런 우, 우, 우연에 열광한다!). 유류할증료 인상으로 항공료가 많이 올랐는데 육지에 가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아야겠다.
*이 글의 주요 레퍼런스는 멜라파운데이션(MELA Foundation) 웹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https://www.melafoundation.org
** “Tuning is a function of time” La Monte Young & Marian Zazeela, Selected Writings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 리움미술관 2026.5.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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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세계》 첫번째 묶음
그레이스
영화를 ‘듣기’ 위한 매체로, 섬세한 저항과 관계 맺기의 감각적·수행 적 가능성을 품고, 확장해 나가려 시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