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 수신자
장소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오만가지 소리들에 불쑥 휩싸이는 상황은 종종 발생한다. 우선 우리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의 집은 한글 니은자(ㄴ) 모양으로 생긴, 불법 증축으로 지어진 옥탑이다. 이 동네를 떠올리면 나에겐 표식 같은 소리가 몇 가지 있다.
공동현관 쪽에 바로 붙어 있는 옆 건물 입구 옆엔 작은 창고 같은 공간이 있는데, 식물 몇 가지와 가구가 뒤얽힌 투명창으로 된 공간이다. 이곳은 식물을 위해서인지 문을 항상 개방해 두는데, 보안 센서로 추정되는 ‘띠-, 띠-…’ 거리는 반복적인 전자음이 하루 종일 옥탑까지 들린다. 집으로 올라와 현관을 등지고 니은자의 첫 획 윗부분에는 나의 책상이 놓여 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우쿨렐레로 추정되는 현악기를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딩디딩.. 딩딩..’ 하며 연습하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옆집인가 했는데, 귀 아래 부근에서 스멀스멀 느껴지는 진동을 따라 바닥에 귀를 대고 들었을 때 아랫집임을 확신했다.
니은자의 아래 획 끝부분에 있는 세차장에서는 하루 종일 ‘촤아아-‘ 하는 호스 소리가 들리고, 다시 니은자 첫 획의 윗부분 앞 건물에 있는 노가리 맥주집에서는 저녁마다 와글와글한 손님들의 소리와 사장님의 하이톤 목소리로 건네는 ‘잘 가요~’ 하는 배웅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나로서는, 이런 소리들이 신경 쓰일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반복적인 순간이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원치 않게 무언가와 소리로 연결될 때면, 공격적인 송신에 무방비한 상태로 수동적 수신을 당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하지만 내 소음도 분명 누군가에게는 내가 느끼는 것처럼 참을 수 없는 소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한편으론, 지루한 날에 갑자기 듣게 되는 흥미로운 소리는 무료함을 흩어 놓는 환기구가 되기도 한다. 가만히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보이지 않는 선으로 맞닿은 관계들에 대한 궁금증이 불어나 소리의 시작점을 상상하게 된다. ~ We are the world ~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면, ‘그래. 미우나 고우나 어떻게든 다 같이 끼여 살아야지 뭐~’ 하는 생각으로 이런 상황에 놓인 나를 능동적 수신자의 위치로 전환시킨다. 그리고 그들과 나 혼자만의 콜라보를 진행한다. 하하하.
이 혼자만의 콜라보에 필요한 건 우선, 귀로 발견되는 존재들에 대한 잦은 관찰과 수집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면 조금 더 수월하다. 아침을 먹다가, 책상에 앉아 재미있는 것을 보다가, 잠자리에 누워 핸드폰을 하다 들리는 기척에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갑자기 출현해서 나의 관심을 확 끌어당기고 사라지는 존재들이 있는데, 이럴 때를 대비해 핸드폰의 녹음기, Zoom H1, 노트북의 포토부스 등 빠르게 수집 가능한 장치의 버튼을 신속히 누르는 훈련을 한다.
이렇게 꾸준히 모은 소리들을 다시 들어볼 때면 꼭 발견되는 특징들이 있다. 내 귀에 감각되는 대로 그 소음들이 가진 박자, 리듬, 음색을 찾아본다. 아랫집의 우쿨렐레 소리를 예로 들자면, 벽을 타고 넘어오며 고음역대는 깎여 뭉툭한 음색이 되었지만, 선명하게 느껴지는 진동과 ‘쿵- 쿵- 쿵- 쿵-’ 하는 느낌의 박자, 그리고 리듬은 언제나 ‘딩딩 디디딩 딩딩 디딕딩 딕딩 디디디’이다. 그렇게 찾은 특징들을 소스의 재료로 삼아 함께 합을 맞춰 본다.
아래는 즉흥곡이다.
♪ 딩딩 디디딕 🎶 ♪
♪ 나는 괜찮아 ♪
♪ 딩딩 디디딕 🎶 ♪
♪ 너도 즐겁니? ♪
음색에 대해 생각하다가 잠깐 다른 길로 샜다. 영어에서 음색을 timbre라고 하니까, 철자만 보면 프랑스어에서 흔히 쓰는 timbre(우표)가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한동안 이 둘이 같은 맥락의 단어라고 막연히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timbre는 소리의 질감, 다시 말해 음색을 의미한다. 프랑스어의 timbre(우표)는 전혀 상관없는 일상어처럼 보이지만, 어원을 따라가 보면 의외의 연결 지점이 있었다.
이 단어는 원래 북이나 종처럼 ‘울리는 물체’를 가리키던 말에서 출발했는데, 한쪽으로는 소리의 성질(음색)을 뜻하게 되었고, 다른 한쪽으로는 금속 인장처럼 ‘찍어서 흔적을 남기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우표(timbre)라는 뜻으로도 이어진 것이다. 이걸 알고 나니, 내가 처음에 느꼈던 혼란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음색은 어떤 소리가 가지는 고유한 흔적처럼 들리고, 우표는 어떤 대상에 찍히는 표식처럼 남는다. 방식은 다르지만, 둘 다 어떤 정체성을 남긴다는 점에서 묘하게 겹쳐 보인다. 그래서 어쩌면 어떤 소리를 ‘우표처럼 찍힌 것’으로 상상하는 것도 완전히 엉뚱한 발상은 아닐지도?
다시 돌아와서… (총총)
나의 여건에서는 방음 시스템 하나 없이 저렴한 헤드폰과 2채널 오디오 인터페이스 하나로 작업하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웃긴 건, 작업을 할 때 헤드폰을 뚫고 들어오는 그들의 소리를 또다시 듣게 될 때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순간에는 재미로 항상 해보는 것이 있다. 실제로 들려오는 소리를 마치 원본 트랙처럼 깔고, 기록된 트랙을 카피 트랙처럼 두어 마구잡이로 변형하며 나름의 ‘라이브 레이어링’을 즐겨본다.
갑자기 또 필드 레코딩에 대한 생각으로 잠시 빠지자면, 장점은 녹음하는 시간 동안 소리에 온전히 집중해서 듣기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끝점에 연결된 출처에 대한 생각도 오랫동안 할 수 있어 좋다. 단점은 녹음한 소리로 작업을 할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평소엔 그렇게 듣기 싫던 소리도 재료로 삼아 작업을 하려고 보면, 소스 하나하나가 각양각색의 매력이 있어 하나도 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모순이다. 덩어리로 느껴지던 소리들이 1분 1초, 아니 0.1초마다 다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인데, 같은 순간을 거쳐 간 모든 존재를 다시 들여다보는 느낌이라 좋다. 필드 레코딩 만세!!
다시 돌아와서… (총총)
작업을 하다 보면 보통 음악과 같은 무언가를 만들게 된다. 앞에서 합을 맞춘다고 이야기했는데, 함께 듀엣 댄스를 추듯이 삐걱거리기도 하고, 호흡이 잘 맞을 때는 덩실덩실 춤을 추는 기분으로 음을 맞추게 된다. 이렇게 관찰과 수집, 그리고 소리 조각들을 지겹도록 들으며 조율하는 몸이 되고 나면 그 존재들에 대한 애정 같은 게 생긴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나 혼자만의 콜라보를 마치고 나면….
능동적 수신자 완성! 데헷
♪ ~ We are the world ~ ~ We are the worl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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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세계》 첫번째 묶음
안민옥
생활 소음 속 타자와의 연결망을 탐구하며 사적 영역과 외부 세계를 잇는 공감의 지평을 구축하는 것에 관심을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