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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밤에게



밤이 밤에게 안부를 묻는다. 밤은 잠에 들어야 한다. 밤은 잠에 들지 못한다.
밤은 하루를 돌아보고 돌보고 돌아선다. 밤의 얼굴이 달에 가려진다.
달의 얼굴이 지구에 가려진다.


밤은 고개를 돌려 어둠을 응시한다. 어두운 골목을 따라 걷는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는 그늘이 있다. 그늘과 그늘 사이에는 그림자가.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에는 사이.
사이의 사이. 사이의 사이의 사이.
밤은 사잇길을 따라 걷는다. 밤들의 행렬에 과거의 밤이 꼬리를 문다.


밤의 과거는 사라진 자리를 묻는다.


그 많던 돌들은 어디로 갔나요?
돌들은 모래가 되어 바람을 타고 이주했습니다.


이주한 모래들의 행방이 묘연하다.


재 먼지 메아리 목소리 소리 말 숨 호흡 숨 말 소리 목소리 메아리 먼지 재


밤은 소멸한 자리를 서성인다. 원에서 원으로. 타원으로.
선에서 선으로. 사선으로, 곡선으로. 점선으로. 실선으로.
빗나간다. 휘어지고 어긋난다. 어긋난다. 이탈한다.


점. 점. 점. 점.


재. 먼지. 메아리. 목소리. 소리. 말. 숨. 호흡. 숨. 말. 소리. 목소리. 메아리. 먼지. 재.




밤이 밤을 이탈한다.
밤은 밤에게 다른 길로 가겠노라고 선언한다.


밤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의 선율을 비튼다


벽과 벽의 틈
돌과 바닥의 틈


오래된 과거를 돌아본다. 오래된 과거는 오래된 미래.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미레.
시원의 바람이 재와 모래를 일으켜 세운다.
쥐들이 하루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자시
과거는 미래로 상승한다.
미래는 과거로 하강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미레
하강한다
침잠한다
어둠에 물든다.


밤이 걷는 길이 겹겹이 쌓인다. 겹과 겹이 포개어진다 .


밤은 점차 너와 나를 헷갈려 하기 시작한다.
너를 나로 읽는 순간이 잦아진다. 나를 너로 읽는 순간이 반복된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너와 나는 포개어진다.
일과 이 이와 삼 삼과 삶 삶과 숫자 숫자와 사물 사물과 시간
시간과 장소 장소 속의 시간 시간 속의 장소
너와 나


밤이 걷는다.
밤이 밤에게 안부를 묻는다.



오로x유은, <밤짓기를 위한 마중물>1, 사운드, 19’12”



소리출처
(유은)
2026년 2월, <밤 짓기>를 위한 거리에서 들려온 여러 소리들
2025년 8월 23일,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들은 다여스님의 <땅설법> 연행
2025년 4월 3일, 송현동 광장, 캄캄밴드의 <다시 만난 세계> 연주와 시민들의 합창
2025년 10월, 강신초등학교 해오름동산에서 들은 새와 풀벌레 소리
(오로)
2026년 3월 7일, Radio Alhara 방송을 듣다가 녹음한 소리
2026년 3월 4일, 평화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1742차, 현장의 목소리들
2023년 5월 14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숙소에서 태풍오는 날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
2023년 3월 1일, 동예루살렘에서 들었던 새소리
2025년 7월 19일, 제주 가파도의 파도소리

소리동행
오로민경, 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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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세계》 첫번째 묶음

유은
존재들 간의 관계맺기 방식에 관해 여러 질문과 시도를 하고 있어요.

음원. 밤짓기를 위한 마중물 (유은x오로).mp3
https://ururu.cloud/~soundn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