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 일지
01 아리셀. 불 탔던 공장 앞. 까매진 건물이 있다. 사람은 없다. 콘크리트에 깊게 들러붙은 파편들이 있다. 참새 소리를 듣는다.
04 기차를 탔다. 눈물이 흐르고 있다고 차마 말하지 못한다.
05 나카가와의 숲에서 선생님을 따라 이 숲의 물의 원천을 향해 올라갔다. 오르막길의 진흙을 헤쳐간다. 선생님의 이름은 카리브. 아버지가 카리브해를 좋아해서 이름이 카리브라고 했다.
02 겨울의 오호츠크해와 한여름 제주 가파도의 바다는 확실히 소리가 다르다. 누군가는 집어 삼키고 누군가는 멀어진다.
110 댐을 짓다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했다. 이곳에서. 노 젓는 소리에서 빛이 난다.
11 어머니 하고 울었다. 아니 웃었다.
12 복동 할머니가 마음을 쉬었다는 통도사 백련암에 갔다. 거북이의 입에서 작은 물들이 똑똑똑…하고 떨어졌다.
09 노이즈에 괜한 것을 기대할 때가 있다. 헛것처럼 그 속에 누군가가 있기를 바랄 때가 있다. 사실은 내가 만들어 내고 있는 소리인 줄도 모르고. 헛것의 노이즈 속에 나와 장비가 있다.
20 아사히다케 설산에서 물이 흐르는 구덩이를 발견했다. 마이크를 담그고 소리를 듣는다. 기분이 좋다.
18 누군가는 세상의 끝이라고 말했던 풍경 앞에 있다. 습지에서는 땅이 꼴꼴꼴꼴 내려앉는 소리가 있다.
44 을숙도의 하류강과 다대포의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이곳에서는 뜻밖의 것들이 서로 부딪히고 있다. 얇은 선들이 리듬을 낸다.
99 한강에 사람이 떠다녀서 물을 저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신을 저어갔다는 글을 읽었다.
100 비와 호수를 따라가자 매 떼가 허공을 빙빙 돌고 있다. 매의 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 두렵지만, 신비롭다.
101 물의 흐름을 따르다 보면 어딘가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안에 신이 살고 있다.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모든 것을 내어주기도 한다.
105 이곳에서 노을을 보니 친구가 그립다.
* 2024 년부터 녹음했던 유수의 시간은 모두 어떤 원형과 연루되어 있는 걸음을 따른 결과값이다. 잘 들리는 것과 듣지 못한 것. 노이즈와 노이즈 아닌 부딪힘들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수수께끼를 안고 이 유수들을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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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세계》 첫번째 묶음
오로
지층과 우주사이의 그리운 감정과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 다. ‘끝의 입자 연구소’ 지킴이입니다.